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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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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탁 명장 사진

시대적 사명을 띤 회령과 분청의 대가. 이규탁 명장

"사람한테는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대요. 제게 도자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대학에 진학하려던 평범한 청년이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 도자기의 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만 40년의 이규탁 명장의 도자기 인생은 참 흥미롭다. 지난 1978년, 우연히 본 신문기사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팔산(八山)의 11대 후손인 다카토리 세이잔이 고국인 대한민국의 젊은 도공에게 회령도자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지원한 국비 도자 장학생 공모에 덜컥 붙게 됐고,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의 도자기를 배우게 됐다.

이규탁 명장 작품 사진 "일본에서 제 스승이 그러시더군요. ‘내가 도자기를 그만하면 우리 조선 도공 가문의 맥이 여기서 끊기겠구나. 선조들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 혼이나마 돌려보내 줘야겠다’ 그런 맘으로 결심하신 일이라고."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운 점도 많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본에서 배웠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천에서 바닥부터 다시 도자기를 배우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이 명장이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스승의 뜻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끌려갔던 선조들의 혼을 돌려보내고자 했던 스승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곳에서 배웠던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후손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 의무감 때문에 지금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회령이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라면, 분청은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펼치는 장이다.

"제가 생 각하는 분청의 소박함은 투박하고 거친 소박함이 아니라 들꽃 처럼 예쁘고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정제된 소박함이에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은 제 맘을 분청으로 표현하는 거죠. 나를 표현 하는 가장 좋은 작품이 청자나 백자보다는 분청이라고 생각했 던 점도 이 부분이에요. 그런 소박함을 작품에 담고 싶었어요."

도자기의 세계로 들어온 지 올해로 41년이 됐다. 그리고 2017년, ‘이천 도자기명장’이 됐다.

"이천 도자기명장은 곧 한국문화 홍보 대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데 있어서 모범이 되고 앞장서 알려야 된다는 책임을 느껴요. 도자기의 고향이 대한민국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세계로 통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조들의 것을 배우고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 지만 오늘에 맞게 변화시키는 작업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명장은 감투가 아니라 그런 역할을 하라는 책임을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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