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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김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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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 명장 사진

손과 물레로만 빚은 청자, 김용섭 명장

"전통도자기에 대한 환상이랄까, 거기서 시작된 거죠."
환상으로 시작된 도자기는 이제 현실이자 일상이 돼 물레를 돌리는 동력이 됐다.

전통도자기를 배우겠다고 이천으로 내려온 지 35년, 김용섭 명장이 청년 시절 가졌던 환상은 깨지기는 커녕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채워졌다.

싫증나지 않냐고요? 전혀요. 온종일 앉아 있어도 싫증 나지 않아요. 내 천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해요. 재밌어요. 지금도, 여전히(웃음)." 그가 도자기에 처음 발을 들인 건 도공을 양성하는 6개월짜리 도자기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대부분 도자기 공장 등에 취직해 도기 제품을 만드는 길로 빠졌지만 김 명장은 전통 도자기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와 전통도자기 공방을 찾아다녔다. 그때 만난 스승이 혁산(赫山) 방철주 선생이었다. 그 밑에서 22년을 배웠다.

김용섭 명장 작품 사진 김 명장이 2004년 독립을 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공방에 있는 성형 기계를 전부 버리는 거였다.

"온전히 물레 성형으로만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옆에 기계가 있으면 자꾸 그걸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거든요. 근데 아예 없으면 생각조차 안 하잖아요. 그래서 고물 장수에게 팔아버렸죠. 당시엔 사람들이 저한테 다 바보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무조건 손으로만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지금도 100% 물레 성형으로 모든 걸 다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명장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물레를 차서 만들었다는 김 명장.

"지 금도 물레가 제 주전공이에요. 수백, 수천 개를 기계처럼 똑같이 만들 수 있어요. 제가 바로 살아있는 기계가 된 셈입니다 (웃음)."

그렇게 독립한 지 단 10여 년만인 2015년, ‘이천 도자기명장’에 선정됐다.

"명장이 된 뒤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있어요. 사소한 행동이라도 남한테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작품을 할 때도 계속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기도 해요."

김 명장의 대표적인 작품은 색이 다른 흙을 섞어 대리석 같은 문양을 내는 ‘연리문(練理紋)’ 청자다. 반죽을 너무 많이 하면 흙끼리 서로 완전히 섞여 무늬가 나오지 않고, 반죽을 덜하면 공기가 빠지지 않아 구웠을 때 균열이 생긴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 중 하나지만, 김 명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공을 들이고 있는 기법이다.

"불량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게 될 가능성도 높다는 말이잖아요. 실패율이 높고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대형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량이 나올 확률도 매우 높지만 평생 가지고 가고 싶은 그런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요."

김 명장은 35년 동안 물레를 돌렸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물레질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작업이에요. 생각지도 않은 실수와 생각지도 않은 값진 작품이 나오기도 하는. 평생을 배워야 하는 게 도자인 것 같아요."

김용섭 명장 작품 사진2 김용섭 명장 사진2 김용섭 명장 작품 사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