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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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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철 명장 사진

분청에 꽃을 피우다. 유용철 명장

거칠어 다루기 힘들고 소성하는 동안 불순물이 녹아 표면에 검은 점무늬가 번진다.
‘투박하고 서민적인 그릇.’

고려 시대 청자와 조선 시대 백자 사이에 불같이 일어나 서민들의 생활에 자리 잡았던 분청.
유용철 명장은 지난 35년 간 서민들의 삶을 닮은 분청 위에 꽃을 피워냈다. 그가 만든 분청 위의 꽃은 어느 무늬 하나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기계로 찍어낸 듯 정교한 꽃무늬는 유 명장의 고집스러운 철학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인화문(印花紋)(꽃 모양으로 도장을 찍는 기법)을 하는데 보통 5개 종류 도장을 3 ~ 4000번 정도 새겨요. 그중에 하나라도 힘 조절을 잘못해서 깊이 들어가거나 찌그러지면 가차 없이 깨버려요. 수정을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도자기는 도예가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입니다. 저한테 완벽하지 않은 도자기는 남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아깝지만 그렇게 깨버립니다."

이향구 명장 작품 사진 유 명장은 태어날 때부터 흙을 만졌다. 유 명장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에게 도자기를 배웠고 유 명장은 또 아버지에게 도자기를 배웠다.

처음부터 도예로 진로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몸이 고된 도자기 일보단 공부를 하길 원하셨다. 그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했고 항공사에서 정비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머릿속에 늘 아른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도자기였다.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아버지에게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에겐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당시 나이 24살. 극구 만류하던 아버지도 결국 유 명장에게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처음 인화문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분청 표면에 꽃 모양 도장을 찍는 작업만 10년을 했죠." 지금은 눈 감고도 찍는다고 하지만, 일정한 깊이로 찍는다는 것은 고되고 오랜 수행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약 15년 후,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유 명장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이곳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왔다. 독립하자마자 인화문이 아닌 다른 기술을 사용한 도자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양한 기법을 배우고 싶은데 물어볼 데가 없었던 게 제일 답답했어요. 그래서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또 물어보는 게 의무인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45살 늦은 나이에 학교 문을 두드렸고 작품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16년, ‘이천 도자기명장’ 의 칭호를 얻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난 후였다. "상을 받아도 ‘이런 작품으로 어떻게 상을 받았냐’고 말씀하시던 분이었어요.
아들에겐 한없이 엄격하셨기에 속으로는 좋으면서 표현을 그렇게 했던 거죠. 아마 제가 명장이 된 걸 보셨다면 분명 좋아하셨을 거예요."
3대째 가업을 이어 도자기를 빚어온 유 명장. 수만 개, 어쩌면 수천만 개에 이르는 꽃을 찍을 동안 포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자기를 하고 있을 때 마음이 제일 편하고 작품을 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도 분청에 꽃을 피워낼 수 있는 동력이지 않을까요?"

유용철 명장 작품 사진2 유용철 명장 사진2 유용철 명장 작품 사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