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최인규

  1. 도자기
  2. 프로젝트
  3. 이천도자기 해외홍보
  4. 프랑스 세계문화유산박람회
  5. 최인규
최인규 명장 사진

변하지 않는 건
푸르른 빛만이 아니었다.

최인규 명장

"청자 말고 다른 걸 해볼 생각은 안 했느냐고요? 청자를 하기에도 시간이 없어요. 아마 평생 청자를 만들어도 다 못 만들 것 같 아요. 아직도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백자나 분청을 만들 생각은 안해봤냐는 질문에 되돌아온 답이었다. 최인규 명장은 도자기 일생 내내 청자를 빚었다.

그가 만든 청자 의 밑바닥에는 ‘푸를 벽(碧)’에 ‘구슬 옥(玉)’, ‘벽옥’이라 적혔다. 벽옥같이 푸르다는 뜻처럼 청자만 바라보며 한 길을 걸어왔다.

최인규 명장 작품 사진 스승이었던 고(姑) 해강(海剛) 유근형 선생을 만난 건 47년 전. 공업고등학교 재학 중 도자기를 배우러 현장 실습을 나갔던 곳이 해강의 작업실이었다. 철없던 시절 도자기와의 첫 조우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군대 제대 후 도자기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발길을 돌린 곳은 다시 이천의 해강도요였다.

"도자기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우연은 그렇게 최 명장을 운명처럼 끌어당겼다.

"그야말로 시계처럼 작업했어요. 그만두고 싶다거나 다른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어요."

능력 있고 성실한 도공 청년에게 수많은 유혹과 역경이 있었지만 최 명장은 그런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우직하게 한 스승 곁을 지켰다. 성실하고 곧은 성품에 스승도 곧 그를 인정했다. 20년을 한결같이 배운 끝에 1991년, 지금의 ‘장휘요’ 간판을 걸고 독립했다. 그리고 2005년 ‘이천 도자기명장’에 이어 2017년 9월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얻게 됐다.

명장이 된 뒤에도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지금도 매일같이 스승의 유작이 전시된 박물관을 찾아 눈에 담고 돌아와 빚기를 반복한다.

"유작을 꺼내 보고 있으면 ‘스승님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쯤이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또다시 작업에 몰두하는 거죠. 지금도 배우는 중이에요."

최인규 명장 작품 사진2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최 명장에게 앞으로 남은 숙제는 ‘탈(脫) 해강’이다.

"해강 선생님에게 배웠기 때문에 저를 이만큼 인정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작품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보면 ‘아 최인규 명장 작품이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는 저 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최 명장의 작업실 한쪽에는 초벌구이 상태의 작품부터 아직 가마에 구워지지 않은 작품들이 줄지어져 있다. 불에 구워지지 않아 무채색의 빛을 띤 채로, 푸른빛을 가슴 깊숙하게 감추고 있는 것처럼.

"저는 작품을 빚고 바로 가마에 넣지 않아요. 굽고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절대 굽지 않는 거죠. 구우면 어떤 모습이 될지를 오랜 시간을 두고 상상해봐요. ‘이젠 구워도 되겠다’ 싶을 때, 그때 가마에 넣어요. 굽기까지 5년이 걸린 작품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래야 제 맘에 드는 빛깔이 나오는 것 같아요."

최인규 명장 사진2, 최인규 명장 사진3 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도자기의 특성상 쉽게 가마에 넣지 못했으리라.

특히, 1200도가 넘는 불을 견디고 나서야 제 빛깔이 나오는 청자는 더욱 그러했을 터.

하지만, 최 명장의 청자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흙에서부터 굽기까지 걸리는 인고의 시간이 아니라 도자기를 대하는 그의 우직하고 올곧은 성품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