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이천도자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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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한국도자기

한반도에서는 지금부터 약 10,000년 전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수천 년 동안 고온번조기술을 발달시켜 삼국시대에는 좀 더 단단한 경질 토기를 완성시켰고 9 ∼ 10세기경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와 백자를 만들어냄으로써 고품격 도자문화를 꽃피웠다.

고려의 우수한 공예 기술과 문화는 12세기 비색청자와 상감청자, 진사청자를 탄생시켜 도자기, 고려청자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도자기의 종주국인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청자는 고려의 비색청자가 천하제일이다.’ 하며 중국인들 동경할 만큼 고려청자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그 후 고려청자의 성공은 분청사기를 거쳐 조선백자로 이어졌다. 14세기부터 세계인의 관심은 순도 높고 단단한 백자로 옮겨졌는데, 단연 아시아의 백자가 으뜸으로 여겨졌다. 조선 왕실은 1467년경 사옹원 분원 관요를 설치하여 왕실 및 관청용 고급백자를 생산 하였다.

이후 백자는 조선 전역에서 널리 유행하였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1592 ∼ 1598)동안 일본에 전파되어 동아시아와 세계도자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17세기 동안 도자산업이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18세기 영·정조(英正·祖) (1724년 ~ 1800년) 시대에 다시 크고 당당한 자태에 섬세한 청화 문양을 넣은 고급백자들이 만들어져 조선 백자의 부흥기를 누렸다. 서양과 문호개방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한국의 도자기는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였기에 오늘날에 그 가치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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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자 문화의 중심지 '이천'의 도자기 역사

이천에서는 약 4,000년전인 청동기시대에 대규모 지석묘(支石墓, 고인돌)가 축조되고 무문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이천에서는 도자기가 꾸준히 제작되었는데, 16세기 초 행정관청의 기록에 따르면 이천의 특산품으로 ‘백옥’과 ‘도기(陶器)’가 유명했다.

현재까지도 이천 곳곳에는 조선시대 도자기를 생산했던 가마터유적이 남아있다. 1884년 분원 관요가 민영화되고 일제강점기 동안 그 정체성을 상실한 전통도예는 해방(1945)과 한국전쟁(1950 ~ 1952)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수도 서울 인근에서 전통 가마와 전통 요업방식을 이용하며 원료와 땔감이 풍부한 곳이 바로 경기도 이천이었다. 기존에 터를 잡고있던 도예가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도예가들로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고, 1987년부터는 매년 열리는 이천도자기축제와 2010년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됨으로써 이천도예의 국제화와 도자산업발전, 도자문화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 이천은 한국도자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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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한국도자기

대한민국 대표 도자도시 이천은 유구한 도자 전통기반위에 근대 이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도예가들이 자연스럽게 형성한 ‘도자 마을’이다.

현재 이천 전역에 약 420 여개에 달하는 공방에서 청자를 비롯한 백자, 분청사기, 옹기, 조형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과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천의 도예가들은 소규모 공방을 운영하면서, 물레를 차고 장작가마 소성을 고집하는 등,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한국도자의 우수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전통도예의 기법과 공정을 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도예가들의 열정과 자부심, 예술혼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 전통도예 분야에 일가를 이루며 한국도자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민국 도자명장들과 이천시가 선발하여 공인하는 이천 도자기 명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형과 기법을 탐구하는 수많은 신진작가들이 전통계승과 발전을 주도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공예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한국도자의 전통을 창조하는데 앞장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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