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천은 어디인가요?

장호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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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원읍 지명유래 - 장호원리

본래 음죽면 남면지역으로서 조선시대 때 유춘역에 딸린 장해원 또는 장호원, 장원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리와 석교촌을 병합하여 장호원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에 편입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되었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가 되는 청미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을이 갈라져 있어서 동쪽 마을을 음성(충주)장호원, 서쪽 마을을 이천(음죽) 장호원이라 부르고 있다.

장호원읍 관할

오남리

본래 음죽군 남면지역으로 오창리와 남천리였다. 10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창리와 남천리를 병합하여 오남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진암리

본래 음죽군 남면 지역으로 진촌리와 계암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진촌. 계암리, 둔말, 국말을 병합하여 진암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최근에 장호원읍사무소가 진암리로 신총 이전해 오면서 주변지역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3개리였던 마을이 7개리로 분리되었다.

송산리

본래 음죽군 남면 지역으로 송곡리 필현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필현리, 산대리, 송곡리를 병합하여 송곡과 산대의 이름을 따서 송산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대서리

본래 음죽군 남면 지역으로 대정리와 근서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정리와 근서리를 병합하여 대서시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1941년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면서 일부지역이 설성면으로 분리되었다.

어석리

본래 음죽군 남면 지역으로 옛 명칭은 어운동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은동, 석당리, 새터를 병합하여 어석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방추리

본래 음죽군 군내면 지역으로 방각동과 추동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각동, 구추동과 남면의 지촌을 병합하여 방추리라 하였으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이황리

본래 음죽군 동면지역으로 [음죽읍지]에 나와 있는 마을의 명칭중 황정포, 노동, 유춘역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목정, 황정포, 노동을 병합하여 이황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와현리

본래 음죽군 동면 지역으로 호현리와 미동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와동과 호현리를 병합하여 와현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나래리

본래 음죽군 동면 지역으로 지형이 나래(날래)처럼 생겼으므로 나래골 또는 나래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곡, 송촌, 월촌을 병합하여 나래리라 하였으며 이천시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음죽읍지]에 나타난 옛 명칭 역시 나래동이다.

풍계리

본래 음죽군 동면 지역으로 풍토리와 적계리 2개 부락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풍토리, 적계리, 봉람, 텃골, 수평을 병합하여 풍토와 적계의 이름을 따서 풍계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노탑리

본래 음죽군 동면 지역으로 노평리, 탑촌, 거물리, 3개부락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탑촌, 거물리, 노평리를 병합하여 노평과 탑촌의 이름을 따서 노탑리라 하였으며 이천군 청미면(장호원읍)에 편입되었다. 이 당시 노평리의 일부지역이 충청북도 음성군에 분할 예속되었다.

선읍리

본래 음죽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음죽군이 이천군으로 병합되기 이전까지 음죽관아가 자리잡아 현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읍지류의 문헌에 현내면에 속한 읍내리, 남산리, 향교리, 원하리, 선흥리 등 여러 부락명이 나타나 있어 매우 번창했던 마을이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과 함께 중심지가 장호원읍으로 옮겨지면서 한적한 전원마을로 변모되었다. 행정구역 개편시 선흥리와 읍내에서 한 자씩 따다가 선읍리라 명명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남산리, 향교리 등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