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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고장
황금들녁의 마을 모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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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성

모가면은 이천시에서 동남쪽으로 14㎞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445m 마국산과 390m이 대덕산이 용인시 백암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주산물은 미곡 위주의 농사를 경작해 왔으나 최근에는 경제성이 높은 축산업,연초,인삼,유리온실 등으로 전환하고 있음.

우리읍소개 이미지

모가면 유래

진가리(陳加里)

옛 명칭은 “갈매울(加洞里)”또는 “갈마동리(乫麻洞里)”라 했다.개편시 진안(陳內)과 갈매울(加洞里) 두마을의 머릿글자를 따다가 진가리(陳加里)로 개칭되었다.
  • 진가1리(갈매울)
    옛날 어느 장군의 말이 목이 말라 죽은 곳이라하여 “갈마(渴馬)울” 이라칭하여 오다가 “갈매울”로 변음 되었다 한다.
  • 진가2리(진안)
    한자로는 “진안(陳內)”이라 쓰고 마을 주변에 축년성대가 밝혀지지 않은 토성의 흔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이 토성의 존재로 미루어 한때 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지역이었음이 틀림없고 진안이란 지명은 병영안과 같은 의미로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본다.

서경리(西坰里)

약 250년 전에 부락에 들이 넓고 마을형이 서남형(西南形)이라하여 한자로 표기하기 위하여 마을형의 서(西)자와 들이 넓다는 데서 들경(坰)자를 따서 서경리라 칭하여 온다.
  • 서경1리(쇠경들)
    마을 뒤에 산세가 소가 밭을 갈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유래된 명칭이라 전하기도하고 법정리 명칭의 서경리와 유래가 같아서 "서경들"의 음운변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 서경2리(봇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예전에 보(洑)가 많아 넓은 들을 구하여 농사를 지었다하여 봇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산내리(山內里)

조선 중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권균(權鈞)이 별세하여 산속에 묘지를 잡고 묘(墓)를 쓴 후 묘지기의 집이 생긴후 점차 호수(戶數)가 늘어감에 따라 산속에 마을을 이루었으니 한자를 따서 “산내리(山內里)”로 불리우고 있다.
  • 산안
    법정 지명리의 산내리(山內里)와 같은 유래로써 산속에 마을이 있다 하여 “산안”이라 불리우고 있다.

송곡리(松谷里)

250여년 전부터 골짜기에 솔나무가 많이 있어 한자 표시를 하기 위하여 송곡리(松谷里)라 불리우고 있다.
  • 굿배미
    굿은 움푹 파인 구덩이라는 뜻이고 배미는 논배미의 준말로써 이 말이 합쳐서 굿배미라 지명 됐다고 하는데 구덩이를 뜻하는 우리 옛말에 “?P”또는 “굿”이 있다.
    또 구덕대.굿막.굿옷과 같이 주로 광산에서 쓰는 용어로써 굿이 구덩이나 갱도를 의미하는 말로서 지금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움푹 파인 논이 많다 하여 “굿배미”라고 한다.
  • 병목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이 산으로 막혀있고 병의 목과 같이 생겨 “병목안”이라 칭한다.
  • 소리울
    마을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여 붙여진 송곡(松谷)의 솔음이 소리울로 변음된 것이다.

양평리(梁坪里)

약 150년 전에 선비가 그 마을은 들이 평야이니 양평리((梁坪里)라 칭하면 부자가 많이 생길 것이라하여 양평리(梁坪里)라 불리우게 되었다.
  • 구은들
    마을 위 산등성이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은(龜隱)”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하며 해마다 풍년을 비는 뜻에서 “구은들(求思野)”이라 부르기도 했다.

소사리(素沙里)

  • 약 400년 전에 소씨가 자리잡고 살았으며 동리(洞里)에 수목이 울창하였고 기러기가 마을 모래에 앉는다 하여 소자와 모래사자를 한문으로 표기하여 “소사리(素沙里)”라 칭하였다.
  • 소새
    읍지(邑誌)에 나타난 옛명칭 역시 소사(素沙)였다.우리말 호칭은 소새인데 고어에서 사(沙)는 새로 발음되었으므로 소새는 흰모래를 뜻하는 소사((素沙)의 동의서로 볼 수 있다.

원두리(院頭里)

고려시대에 서가(西家)경영으로 원이라는 주막이 있어 주인은 없이 음식만 차려 놓고 가격을 정하여 놓으면 먹은 사람이 가격에 의하여 두고가는 곳이라 하여 원이라는 주막의 원(院)과 돈주머니의 두라는 머리를 따서 원두리(院頭里)로 칭함.
  • 원두1리(원머리)
    고려시대 나라에서 원(院)을 지어 주인없이 이용하였던 곳이라 하여 원머리라 칭하였다.
  • 원두2리(웃미리울)
    옛날 어떤 사람이 상을 당하여 집에 오기전에 미리 운곳이라 하여 미리울이라 칭하였다 한다.
  • 원두3리(아랫미리울)
    옛날 어떤 사람이 상을 당하여 집에 오기전에 미리 운곳이라 하여 “미리울”이라고 칭하였는데 그 “미리울”에 대하여 아랫미리울이라 칭한다.아랫미리울은 웃미리울에 비하여 후에 생긴 부락이다.

소고리(所古里)

옛날 도인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소욕형이라 부락명을 소고(所古)라고 하면 소원성취 될 것이라고하여 “소고리(所古里)”라고 칭하였다 한다.
  • 소고1리(소고지)
    옛 도인이 소고리(所古里)라고 부락명을 지으라하여 소고(所古)지라 불리우고 있다.
  • 소고2리(밤나무골)
    밤나무골은 글자 그대로 마을주변에 밤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이다.지금도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어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지금은 고목이 다 되었지만 이 밤나무에 열린 밤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소고2리(쇠골)
    마을 건너편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어서 “쇠골”이라고 했다 한다.
  • 소고3리(새말)
    옛날에 없던 마을이 새로 생겨 새마을이라 부르다가 새말이 되었다.
  • 점촌
    옹기를 굽던 옹기점이 있어 점촌(店村)이라고 했다.

신갈리(薪葛里)

약 340년 전에 동리 주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넝쿨이 무성하여 동리주변 환경대로 한자로 표기한 것이 섭신(薪)자와 칡갈(葛)자를 따서 “신갈리(薪葛里)”로 칭하였다.
  • 신갈1리(갈미)
    갈나무가 많은 모(산)라하여 갈미(뫼)라 속칭되었다.신갈리에 옛지명은 갈산리(葛山里)였는데,본디 대월면 지역이였다가 1914년 모가면에 편입되었다.
  • 신갈2리(넘말)
    모가면 신갈리 갈미라는 부락 너머에 있다고하여 넘말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월촌(越村)의 뜻이다.

어농리(於農里)

어농리의 옛이름은 於陵洞里였음. 100년 전에 어느 도승이 와서 좌결(座訣)을 하다가 용(龍)이 승천한 자리는 농사를 지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하여 늘 농사를 짓는 다는 뜻으로 늘어(於)자와 농사농(農)자를 따서 “어농리(於農里)”라 칭함.
  • 어농1리(어농굴)
    옛날 어느 도승이 말하기를 용(龍)이 승천한 곳에 농사를 지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하여 “어농”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 어농2리(어룡골)
    용(龍)이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에 따라 “어룡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어농3리(풍덕말)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한 부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크게 선덕을 베풀었기 때문에 이웃마을에서 이곳을 덕이 많은 마을이라하여 “풍덕(豊德)말”이라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두미리(豆美里)

200년 전에 두역동(豆亦洞)이라는 부락과 시미동(侍美洞)이라는 부락이 있어 두역동(豆亦洞)의 두(豆)와 시미동(侍美洞)의 미(美)를 따서 두미리(豆美里)로 불리우고 있으며 두역동(豆亦洞)은 150년 전에 스스로 없어졌다고 한다.
  • 두미1리(미륵댕이)
    450년전 이곳에 난폭한 산적이 있어 부락사람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던중 장사(壯士)가 들어와 이 산적을 멀리 내쫓고 이곳에 큰 미륵을 세워 미륵지붕까지 만들고 갔다하여 부락민이 미륵댕이라 칭하고 있으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 두미2리(시미골)
    약 450년전에 한 도인이 산수(山水)가 좋고 미려하여 미인(美人)과 귀인(貴人)을 많이 모시게 될 것이라고하여 아룸다울미(美)자와 모실시(侍)자를 따서 시미(侍美)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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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