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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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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승천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 반룡송(蟠龍松)
승승천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 반룡송(蟠龍松)
  • 지정일 : 1996. 12. 30
  • 소재지 :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
  •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381호
  • 수령 : 480년 이상 이천9경중 6경

『만년송(萬年松)』『반룡송』으로 유명한 이 소나무는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있으며 경기도 지정 보호수로 되어있다. 반룡송은 천연적으로 황룡이 용트림을 한 듯이 밑둥치부터 뻗어 올린 중간 부분이 뒤틀려 있으며, 두 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늘어뜨린 모양이 용이 비상하는 형상이다. 수세(樹勢)가 매우 좋아 신령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수령(樹齡)은 48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의하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명당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비롯해 함흥, 서울, 강원도, 계룡산에 반룡송 5그루를 심었으며 만룡송(萬龍松)이라고 『옥룡자비결(玉龍子秘訣)』에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 후 함흥에서 이태조, 서울은 영조, 계룡산은 정감이 태어났고 강원도에 심은 나무는 죽었으며 백사면에서는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이라는 설에 따라 신씨네가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일대에서 문무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현재도 고시합격자가 매년 잇달아 나온다는 것이다. 나무 이름은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龍)이라 하여 반룡송(蟠龍松), 일 만년 이상 장수할 용송이라 하여, 만룡송(萬龍松)이라고도 하며 만년송(萬年松)은 만룡송의 와전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소나무는 동리 사람들에게 매우 신성시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의 껍질을 벗긴 자가 창병으로 사망하였는가 하면 커다란 변고가 있을 때마다 몸체에 이상이 생긴다고 한다. 실제 이 나무의 몸체에는 줄이 2개가 그어져 있는데 임진왜란과 6 25전쟁 때 생긴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 이상한 것은 이 나무는 가지가 계속 꼬이면서 옆으로만 자랄 뿐 위로는 키가 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씨네가 정착한 이후 1980년대까지는 가을마다 시루떡을 지어 반룡송에 제사를 지냈으나 신씨네가 이사한 후로는 특별히 돌보는 이가 없었다. 현제 신씨네의 가옥은 없고 빈터 가운데 반룡송만 남아있다.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靈源寺石造藥師如來坐像)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靈源寺石造藥師如來坐像)
  •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2호
  • 소재지 : 이천시 백사면 송말리 435
  • 관리자 :영원사 주지
  • 재 료 : 화강암
  • 시 대 : 통일신라말 - 고려초기

본래 영원사(靈源寺) 입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5년 새로 연화대좌(蓮花臺座)를 만들어 대웅전(大雄殿) 우측에 있는 약사전(藥師殿) 안에 안치(安置)해 놓았다. 목 위의 두상(頭像) 부분은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불상의 높이는 118cm, 어깨 폭은 105cm이며, 대좌의 높이는 94cm이다.

새로 조성한 머리는 라발(螺髮)에 육계(肉계)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두 귀는 목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목에는 3도(道)가 있고, 부드러운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다. 법의(法依)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이르는 옷섶에 걸쳐 늘어진 레이스형의 주름이 독특하다. 오른발은 두툼한 왼쪽 무릎에 얹어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하향(下向)하게 하여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위에 약단지를 받쳐 들고 있어, 이 불상이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임을 알 수 있다. 영원사의 사적기(寺蹟記)에 의하면, 신라(新羅) 선덕여왕 7년(638) 해호선사가 절을 창건하고 수마호석(水瑪湖石)으로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을 조성 봉안 했다고 한다. 그러나 표현 수법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보기는 어렵고, 통일신라말-고려 초기 이상으로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영원사
영원사
  • 등록일 : 1988. 7. 28
  • 지정번호 : 제52호
  •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원적로869번길 309-52
  • 종단 :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 말사
  • 전화 : (031)632-4404

『원적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영원사(靈源寺)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 해호(海浩)선사가 창건했는데 초창 당시의 절은 지금의 절터보다 약간 윗쪽에 있었다고 한다. 초창 때부터 일제시대까지는 영원암(靈源庵)이라 불렀으며 당시 수마노석(水瑪瑙石)으로 조성한 약사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

수마노석은 석영(石英)의 하나로써 매우 아름다운 빛과 광택이 있으며 홍.흑.백의 세 종류가 있다. 이 돌은 일명 수만호(水曼胡)라고도 부르는데 공주 마곡사 법당 앞에는 수마노석으로 만든 수마노탑이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그 후 400여년이 지난 1068년(고려 문종22)에 혜거국사(慧距國師)가 불타버린 영원암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 때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가 지금도 살아 있다.
이천백송
이천백송
  • 지정일 : 1976. 6. 23
  • 소재지 : 이천시 백사면 신대리 산32
  •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253호
  • 규모(수량) : 높이 약 16m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짧은 가지 끝에 세 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수꽃이삭은 긴 타원형 암꽃이삭은 달걀 모양인데 5월에 꽃이 핀다. 솔방울은 달걀 모양이며 종자는 조금 큰 편이고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 學園社 大百科辭典(학원사 대백과사전)에서) 중국이 원산지로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는 희귀종으로서 발견되는 대로 지정보호를 받고 있는데 전국을 통털어 서울에 通義洞, 元曉路, 劑洞, 壽松洞등 네그루가 있고 密陽(밀양), 報恩(보은), 禮山(예산)에 각각 한그루, 그리고 이천의 백송 등 모두 8그루가 있다.

栢沙面(백사면) 新垈里(신대리) 部落(부락)뒷동산에 있는 이 백송도 우리나라의 天然記念物(천연기념물)253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그 껍질이 藥材(약재)가 된다는俗說(속설) 때문에 몰지각한 사람들이 몰래 껍질을 벗겨가는 등 수난을 받기도 하였다. 나무의 높이는 16m 가량이며 밑둥치에서 부터 두 그루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늘인 모양이 보기에 좋다. 수령은 220여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확실한 유래는 확인 할 수 없으나 이 마을 노인들에 말에 의하면 全羅監司(전라감사)를 지낸 민달용(閔達鏞)의 묘를 이곳에 안치한 후 그 후손들이 묘 앞에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육괴정
육괴정
  • 지정종목 :향토유적
  • 지정번호 :이천향토유적 제13호
  • 소재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 시대 :조선
  • 종류 :정자

이천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낙향한 엄용순(嚴用順)이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초당(草堂)이었으나 여러 차례 중건하여,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은 본 건물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이 있는 사당의 형태로 변모하였다. 본당은 정면 9m, 측면 3.78m 규모이며, 내부에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엄용순의 손자 엄유윤(嚴惟尹)의 충신정문과 ‘남당엄선생육괴정서(南塘嚴先生六槐亭序)’, ‘육괴정중수기(六槐亭重修記)’ 등의 현액이 걸려 있다.

‘육괴정(六槐亭)’이란 이름은 엄용순을 비롯하여 당대의 명현인 김안국(金安國), 강은(姜隱), 오경(吳慶), 임내신, 성담령(成聃齡) 등 6명의 선비가 시회와 학문을 논하며 우의를 기리자는 뜻으로,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6그루의 나무 중 3그루가 고사하고 나머지 3그루만 살아 있었는데 고사한 3그루를 대신하여 후손들이 새 느티나무를 다시 심었다. 처음 심었던 3그루는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었다.
김좌근 고택
김좌근 고택
  • 지정종목 : 시도민속자료
  • 지정번호 : 경기민속자료 제12호
  • 지정연도 : 2003년 4월 21일
  •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청백리로393번길 100-131
  • 시대 : 조선
  • 종류 : 가옥

2003년 4월 경기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내촌리 소일마을 상단 뒤편에 나지막한 산을 끼고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후기에 세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던 김좌근(1797~1869)의 묘지를 관리하는 한편 별장으로도 사용하기 위해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金炳冀)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99칸이나 되는 대규모 전통 한옥이었으나 현재는 솟을대문, 담장, 행랑채가 모두 없어지고 안채와 별채 등 42칸만 남아있는상태다. 비록 원래의 규모보다 줄어든 상태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을 통해 조선 후기 권문세가의 가옥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도립서당
도립서당
  • 소재지 :경기도 이천시 원적로775번길 38-92

전통은 오래된 미래라는 믿음으로 오늘 속에 옛 배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도립서당은 전통, 삶, 정신의 가치를 지키고자 세워진 서당이다. 개인의 자유만을 외치기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 수단으로서 더 많은 축적에 의미가 있는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들고 실천되는 앎, 전통과 현대가 반목하기보다 서로 어우러지고 화해하는 배움, 그런 사람들이 살고 그러한 앎과 배움이 함께하는 터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도립서당이 꿈꾸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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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6